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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독립선언문(2013.3.1)

자연산 2013. 3. 1. 07:00

 

  2.8독립선언문, 3.1운동, 기미독립선언문!

 

 

 

●. 2.8독립선언문(3.1운동의 기폭제).

 

 

▲. 1918년 와세다대학 철학과 학생이던 이광수는 베이징에 건너가 체류 중에 제1차 세계대전의 휴전 민족자결 원칙 윌슨 강령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중국인들은 이 소식을 듣고 파리 강화회의에서 중국의 완전한 독립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였다. 이광수도 조선 독립의 희망을 품었으며 파리강화회의에 중국대표 주정샹 구웨이준 후웨이더 등이 베이징을 떠난 후 이광수는 서울로 돌아가 현상윤 그리고 최린과 독립운동을 논의하였다. 이광수는 11월 동경으로 돌아가 와세다 대학의 정경과에 있던 최팔용을 만나 결의를 밝혔고 최팔용은 백관수, 김도연, 서춘, 김철수, 최근우, 김상덕 등의 동지를 얻었다. 이광수는 원문을 쓰고 영문으로 번역을 하였다. 최팔용은 이광수가 상해에 피하여 있을 것을 권유하였고 이광수는 이 요구를 따라 상하이로 피신하였다. 본 독립선언은 만주 지린에서 발표되었던 무오 독립선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상해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김규식의 지시에 따라 조소앙이 동경에 파견되어 유학생들을 지도하여 이루어지게 되었다.

 

 

 

▲. 전 조선청년독립 단은 아 2천만 민족을 대표하야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득한 세계만국의 전에 독립을 기성하기를 선언하노라. 4천3백년의 장구한 역사를 유한 오족은 실로 세계 고민족의 하나이라. 비록 유시호 중국의 정삭을 봉한 사는 유하얏스나 차는 양국왕실의 형식적 외교관계에 불과 하얏고 조선은 항상 오족의 조선이고 일차도 통일한 국가를 실하고 이족의 실질적 지배를 수한 사 무하도다. 또 합병 이래 일본 조선통치 정책을 보건대 합병시의 선언에 반하야 오족의 행복과 이익을 무시하고 정복자가 피정복자에 대한 고대의 비인도적 정책을 습용하여 오족에게 참정권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 등을 불허하며 심지어 신교의 자유 지업의 자유까지도 불소히 구속하며 행정 사법 경찰 등 제기관이 조선민족의 사권까지도 침해하며 공사간에 오인과 일본과의 우열의 차별을 설하며 오족에게는 일본인에 비하야 열등한 교육을 시하야서 오족으로 하여금 영원히 일본인의 사용자로 성케 하며 역사를 개조하야 오족의 신성한 역사적 전통과 위엄을 파괴하고 능모하며 소수를 제한 이외는 정부 제 기관과 교통 통신 병비 등 제 기관에 전부 혹은 대부분 일본인을 사용하야 오족으로 하여금 영원히 국가생활에 지능과 경험을 득할 기회를 부득케 하니 오인은 결코 여차한 무단전제 부정 불평등한 정치 하에서 생존과 발전과를 향유키 불능한지라. 그뿐더러 원래 인구 과잉한 조선에 한으로 이민을 장려하고 보조하야 토착하니 오족은 해외에 유리함을 불면하며 정부의 제기관은 물론이고 사설의 제 기관에까지 일본인을 사용하야 일단 조선인의 부를 일본으로 유출케 하고 상공업에도 일본인에게만 특수한 편익을 여하야 오족으로 하야금 산업적 발흥의 기회를 실케 하도다. 여차히 하 방면으로 관하야도 오족과 일본과의 이해는 상호배치하야 기해를 수한 자는 오족이니 오족은 생존 권리를 위하여 독립을 주장하노라. 최후 동양평화의 견지로 보건대 위협이던 아국은 이미 군국주의적 야심을 포기하고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 한 신국가의 건설에 종사하는 중이며 중화민국도 역연하며 겸하여 차후 국제연맹이 실현되야 다시 군국주의적 침략을 감행할 강국이 무할 것이다. 그러할진대 한국을 합병한 최대이유가 소멸되었을 뿐더러 차로부터 조선민족이 무수한 혁명란을 기한다면 일본에게 합병된 한국은 반하야 동양평화의 요란하고 화원이 될지라. 오족은 정당한 방법으로 오족의 자유를 추구할지나 만일 차로써 성공치 못하면 오족은 생존의 권리를 위하야 온갖 자유행동을 취하야 최후의 일인까지 자유를 위하는 열혈을 유할지니 어찌 동양평화의 화원이 아니리오? 오족은 일병이 무하니 오족은 병력으로써 일본에 저항할 실력이 무하도다. 일본이 만일 오족의 정당한 요구에 불응할진대 오족은 일본에 대하야 영원의 혈전을 선하리라. 오족은 구원히 고상한 문화를 유 하얏고 반만년 간 국가생활의 경험을 유한자라 비록 다년간 전제정치하의 해독과 경우의 불행이 오족의 금일을 치하얏다 할지라도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 한 민주주의의 선진국의 범을 취하야 신국가를 건설한 후에는 건국 이래 문화와 정의와 평화를 애호하는 오족은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문화에 공헌함이 유할 줄을 신하노라. 자에 오족은 일본이나 혹은 세계 각국이 오족에게 자결의 기회를 여하기를 요구하며 만일 불연이면 오족은 생존을 위하야 자유의 행동을 취하야 써 독립을 기성하기를 선언하노라. 재일본 동경조선청년독립 단 대표. 최팔용 , 이종근 , 김도연 , 송계백 , 이광수 , 최근우 , 김철수 , 김상덕 , 백관수 , 서춘 , 윤창석.

 

 

 

●. 3.1운동 (三一運動).

 

 

 

▲. 1910년 국권피탈 후 일제는 경제적으로 한국인의 이권을 빼앗고 한민족 고유의 문화를 말살하려 하였다. 조선총독부는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여 전국토의 40%를 점유하고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비롯한 일본이민(日本移民)에게 헐값으로 토지를 불하하여 그 결과 한국의 영세농민은 토지를 잃고 비참한 생활을 하였다. 또한 일제는 독립운동이나 애국운동을 탄압하고 식민지교육을 강요하는 등 사회적·문화적 활동을 봉쇄하는 무단정치를 강행하였다. 그리하여 독립 운동가들은 해외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거나 혹은 지하로 숨어서 비밀리에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1918년 1월 8일 미국의 T.W. 윌슨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발표하자 민족지도자들은 이에 의거하여 한민족의 독립을 호소해 보고자 하였다. 상하이[上海(상해)]에 망명중인 애국지사들은 파리강화회의 개최와 민족자결론에 관한 보도를 보고 회합하여 김규식(金奎植)을 파리강화회의에 여운형(呂運亨)을 소련에 각각 파견하여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게 하는 한편 장덕수(張德秀)를 일본에 보내어 한국인유학생들과 연락을 취하고 김철(金澈)·선우혁(鮮于赫) 등을 국내로 잠입시켜 비밀리에 활동을 개시하도록 하였다. 국내에서도 민족자결주의사상이 차츰 알려지게 되자 독립운동의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렇게 고조된 독립운동의 분위기에 불을 당긴 것은 일본에서 거행된 2·8독립선언이었다. 당시 일본의 한인유학생들 사이에는 여러 애국단체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1912년 10월 27일 조직된 조선유학생학우회는 항일독립사상이 충일한 단체였다. 이들은 저팬 애드버타이저 에 재미동포의 활동상황이 보도되자 비밀리에 독립 문제를 토의하고 1919년 1월 6일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웅변대회를 개최하여 민족자결주의원칙에 따라 한국의 독립을 일본내각과 각국 대사관 및 공사관에 청원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 실행위원으로 최팔용(崔八鏞)·송계백(宋繼白)·최근우(崔謹愚)·서춘(徐椿)·김도연(金度演)·백관수(白寬洙) 등을 선출한 후 비밀회합을 거듭하여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 독립선언서와 결의문을 작성하였다. 또한 송계백과 최근우를 국내에 파견하여 최린(崔麟)·송진우(宋鎭禹)·최남선(崔南善) 등과 접촉하게 하여 국내에서도 독립운동을 일으킬 것을 청하는 동시에 활자와 운동자금을 마련하여 오도록 하였다. 마침내 같은 해 2월 8일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600여 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조선유학생학우회가 열렸다. 이 회합에서 한국독립의 필연성과 정당성을 천명한 독립선언서를 백관수가 낭독하고 김도연이 결의문을 낭독하였다. 대회가 끝날 무렵 도쿄[東京(동경)] 경시청에서 급파된 경찰대가 장내에 진입 실행위원 10명이 검거되었다. 이에 유학생들은 전원 귀국할 것을 결의하고 국내에 돌아와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3월 1일에 일어난 거족적인 독립만세운동에 합류하였다. 국내에서는 민족자결주의가 발표된 이래 독립운동의 분위기가 점차 고조되어 가고 있을 때 고종이 급서하였다. 1910년 국권피탈 이래 지하에서 비밀리에 독립사상을 고취하며 독립운동의 기회만을 찾고 있던 일부 민족지도자들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원칙 발표, 재일유학생의 2·8독립선언, 고종의 급서 등이 계기가 되어 민족적 항일의식이 고조되자 이때가 한민족의 독립을 꾀할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거족적인 3·1운동을 본격적으로 계획하였다. 1918년 말부터 천도교측은 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최린·손병희(孫秉熙)등을 주축으로 구체적인 추진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독립운동의 3대원칙으로 독립운동을 대중화할 것, 일원화할 것 비폭력적으로 할 것 등을 결정하고 그리스도교·불교·유림 등 각 교단을 총망라하는 동시에 대한제국시대의 유지들을 민족대표로 추대할 것에 합의하였다. 이에 송진우·최남선 등은 조선 말기의 인사들과 협의하였으나 성과를 얻지 못하여 민족대표에서 그들을 제외하기로 하였다. 이때 최남선은 그리스도교 측에서도 독립운동계획이 있는 것을 알고 그리스도교 측의 대표자격인 이승훈(李昇薰)에게 연락 교섭하였다. 이승훈은 1919년 02월 12일 김성수(金性洙)의 별장에서 송진우·신익희(申翼熙)를 통하여 이같은 계획을 듣고 독립운동에 합류할 것에 찬성하고 그리스도교 측 동지를 규합하기 시작하였다. 불교측과의 교섭은 최린이 담당하였다. 그는 승려 한용운(韓龍雲)과 독립운동 계획에 관해 협의하고 응낙을 얻어냄으로써 불교측과의 연합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한용운은 해인사 주지 백용성(白龍城)과 협의하여 동참하게 하였다. 한편 같은 해 1월 하순 중앙기독교청년회 간사 박희도(朴熙道)는 김원벽(金元璧)과 만나 서울 각급학교의 졸업생 및 재학생의 주요 인물들과 대관원(大觀園)에서 독립운동에 관하여 토론하고 그들도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리하여 추진계획이 급속도로 진행되어 김원벽은 연희전문학교 학생 이병주(李秉周)에게 알리고, 다시 회원 40명에게 알려 찬성을 얻었으며 대관원에 모였던 학생대표들은 각기 자기의 학교와 중등학교 학생들을 규합하여 이에 협조하기로 하였다. 이로써 개별적인 독립운동 추진계획이 통합 단일화되고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민족대표의 인선이 시작되었다. 천도교 측에서는 이종일(李鍾一)·권병덕(權秉悳)·양한묵(梁漢默)·김완규(金完圭)·홍기조(洪基兆)·홍병기(洪秉箕)·나용환(羅龍煥)·박준승(朴準承)·이종훈(李鍾勳) 등 11명과 손병희·권동진·오세창·최린이 서명 날인하였고 그리스도교 측에서는 이승훈·양전백(梁甸伯)·오화영(吳華英)·박희도·최성모(崔聖模)·이필주(李弼柱)·김병조(金秉祚)·김창준(金昌俊)·유여대(劉如大)·이명룡(李明龍)·박동완(朴東完)·정춘수(鄭春洙)·신석구(申錫九)·이갑성(李甲成)·길선주(吉善宙)·신홍식(申洪植) 등 16명이 서명하였고 이에 불교측의 한용운·백용성이 가담하여 민족대표는 모두 33명으로 결정되었다. 독립선언서는 최남선이 기초하여 2만 1000매를 인쇄하였으며 거사일은 3월 1일로 결정하였다(처음에는 고종의 인산일인 3월 3일로 정했다가 불경스럽다는 의견이 나왔고 또 2일은 그리스도교인의 안식일이라 하여 1일로 결정되었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명 가운데 29명(지방에 있던 길선주·김병조·유여대·정춘수는 불참)은 서울 인사동에 있는 태화관(泰和館)에 모여 독립선언 시각인 오후 2시 독립을 선언하는 한용운의 간단한 식사를 들은 다음 그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제창하였다. 그리고 미리 건 전화 연락을 받고 태화관으로 달려와 포위해 있던 80여 명의 일본경찰에 의해 의연한 태도로 연행되었다. 그 무렵 탑골공원에는 서울의 중등학교 이상의 남녀학생 4000∼5000명이 독립선언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희생을 염려하여 장소를 태화관으로 옮긴 민족대표들이 나타나지 않자 경신학교 졸업생 정재용(鄭在鎔)이 자진하여 등단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독립선언서의 낭독이 끝날 무렵 학생들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종로 쪽으로 뛰쳐나가 시위행진에 들어갔다. 수많은 군중이 이에 호응하여 함께 행진하였으며 시위대열이 대한문(大漢門) 앞에 이르렀을 때는 온 서울 시내가 흥분된 군중과 만세소리로 들끓었다. 이 만세시위행진은 해질 무렵부터는 교외로 번져나갔으나 질서를 유지하였기 때문에 단 한 건의 폭력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평화적 시위를 전개하던 군중은 일본군대와 기마경찰의 무력저지로 인하여 강제 해산되고 주모자 130여 명이 체포, 구금되었다. 03월 01일에는 서울뿐만 아니라 평양(平壤)·진남포(鎭南浦)·안주(安州)·의주(義州)·선천(宣川)·원산(元山) 등 서울 이북지방에서도 독립선언식과 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렇게 하여 3월 1일 시작된 독립만세운동은 전국 각지로 파급되어 2일에는 경기도 개성(開城), 충청남도 예산(禮山) 등에서 치열하게 벌어졌다. 그 밖에 전라북도는 4일 옥구(沃溝) 시위, 경상북도는 8일 대구(大邱) 시위 전라남도는 10일 광주(光州) 시위, 강원도는 10일 철원(鐵原) 시위 함경북도는 10일 성진(城津) 시위 경상남도는 11일 부산진(釜山鎭) 시위로 각각 번져갔고 19일에는 괴산(槐山) 시위로 충청북도에 점화됨으로써 전국 13도가 일제히 3·1운동의 대열에 나서게 되었으며 21일 제주(濟州)와 조천리(朝天里) 시위로 바다 건너 제주도에까지 파급되어 한국 역사상 최대의 민족운동으로 발전하였다. 각 지역에서 만세운동의 주체는 각계각층을 망라하였다. 천도교·그리스도교·불교·학생측 외에도 각 지방의 만세운동에는 농민이 가담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도시의 상인들은 연합하여 철시를 단행함으로써 일제에 항거하였으며 노동자·승려·관리는 물론 어린이·거지·기생이 주동한 곳도 있었다. 국내에서의 3·1운동의 거센 물결은 국외에도 파급되었다. 서간도(西間島)와 북간도(北間島)를 비롯한 만주(滿洲) 지역에서의 독립만세운동은 간도와 훈춘[琿春(혼춘)] 등 둥산성[東三省(동삼성)] 지방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미주지역에 흩어져 살던 한국 교포들도 국내의 3·1운동에 호응해서 모두 궐기하였다. 프리모르스키 지역에서도 3월 17일 대한국민회의가 주체가 되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규모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와 같은 민족적 궐기의 규모를 확실하게 알 수는 없으나 집회횟수 1542회, 참가인원수 202만 3098명, 사망자수 7509명, 부상자수 1만 5961명 피검자수 4만 6948명으로 추산된다. 3·1운동은 한민족이 자주독립을 위하여 거족적으로 일으킨 항일민족투쟁으로, 국권의 회복과 개인적 자유를 얻기 위하여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한 비폭력투쟁이었다. 또한 민족문화의 자주성과 주체성을 천명하고 그것을 수호하고자 한 민족의식의 발로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3·1운동은 일제에 의하여 유린된 민족의 생존권과 주권의 회복을 위한 민족운동으로 전개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일제의 무력적인 탄압으로 비폭력투쟁이었던 3·1운동에서 많은 희생자가 나오게 되자 그 방향을 실력투쟁으로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되어, 3·1운동 이후 폭력수단에 의한 투쟁이 연달아 일어났다. 3·1운동 결과 중국 상하이의 프랑스조계(租界;공관거류지)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이는 전국민을 전제로 한 국민정부인 동시에 국제정치에서 한국의 존재를 과시하는 데 큰 의의가 있었다. 따라서 임시정부는 비록 해외에서 활약하기는 했으나 이것을 통한 국제적 정치활동은 독립의 모태적 역할을 하였다. 또한 3·1운동은 민족운동의 일원화·대중화·비폭력화의 대원칙을 통하여 민중의 정치적 자각을 불러일으켰다. 천도교를 주축으로 그리스도교·불교·유교 등 독립운동의 주체가 일원화되었다는 점 지식층·농민·상공업자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참여하였다는 점 등은 민족의식의 발로를 엿보게 해 주는 특기할 만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자각된 민족의 끊임없는 대일항쟁은 일제의 식민정책의 일부를 수정하게 하여 무단정치를 문화정치로 전환하게 하면서 독립운동의 정신적·내면적 충실을 기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즉 신교육기관의 설립 물산장려운동의 전개 언론창달을 위한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의 창간이 실현되어 민족자립의 기초를 다지게 하였다.

 

 

●. 기미독립선언문.

 

▲.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하노라. 이로써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똑똑히 밝히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하노라. 반 만 년 역사의 권위를 의지하여 이를 선언함이며 2천 만 민중의 충성을 합하여 이를 두루 펴 밝힘이며, 영원히 한결같은 민족의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가 가진 양심의 발로에 뿌리박은 세계 개조의 큰 기회와 시운에 맞추어 함께 나아가기 위하여 이 문제를 내세워 일으킴이니 이는 하늘의 지시이며 시대의 큰 추세이며 전 인류 공동 생존권의 정당한 발동이기에 천하의 어떤 힘이라도 이를 막고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에 희생되어 역사 있은 지 몇 천 년 만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억눌려 고통을 겪은 지 이제 십 년이 지났는지라 우리 생존권을 빼앗겨 잃은 것이 무릇 얼마이며, 겨레의 존엄과 영예가 손상된 일이 무릇 얼마이며 새롭고 날카로운 기백과 독창력으로써 세계 문화의 큰 물결에 이바지할 기회를 잃은 것이 무릇 얼마인가! 슬프다 예로부터의 억울함을 떨쳐 펴려면 지금의 괴로움을 벗어나려면 앞으로의 위협을 없애려면 눌러 오그라들고 사그라져 잦아진 민족의 장대한 마음과 국가의 체모와 도리를 떨치고 뻗치려면 사람마다 제 인격을 올바르게 가꾸어 나가려면 가엾은 아들딸들에게 괴롭고 부끄러운 유산을 물려주지 아니하려면 자자손손이 완전한 경사와 행복을 길이 누리도록 이끌어 주려면 가장 크고 급한 일이 겨레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니 2천만의 사람마다가 마음의 칼날을 품어 굳게 결심하고 인류공통의 옳은 성품과 시대의 양심이 정의라는 군사와 인도라는 무기로써 도와주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나아가 얻고자 하매 어떤 힘인들 꺾지 못하며 물러가서 일을 꾀함에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하랴? 병자 수호 조약 이후 때때로 굳게 맺은 갖가지 약속을 저버렸다 하여 일본의 신의 없음을 죄주려 하지 아니 하노라.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우리 옛 왕조 대대로 닦아 물려 온 업적을 식민지로 보고 문화민족인 우리를 마치 미개한 사람들처럼 대우하며 다만 정복자의 쾌감을 탐할 뿐이요 우리의 오랜 사회 기초와 뛰어난 민족의 성품을 무시한다 하여 일본의 의리 없음을 꾸짖으려 하려 안이 하노라.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을 갖지 못하노라. 현재를 준비하기에 바쁜 우리는 묵은 옛일을 응징하고 가릴 겨를도 없노라. 오늘 우리의 할 일은 다만 자기 건설이 있을 뿐이요, 결코 남을 파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로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자기의 새 운명을 개척함일 뿐이요 결코 묵은 원한과 일시적 감정으로써 남을 시기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로다. 낡은 사상과 낡은 세력에 얽매여 있는 일본 정치가들의 공명심에 희생된,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한, 그릇된 상태를 고쳐서 바로잡아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바른 길, 큰 근본이 되는 길로 돌아오게 함이로다. 당초에 민족의 요구로 부터 나온 것이 아니었든 두 나라의 합방이었으므로, 그 결과가 필경 위압으로 유지하려는 일시적 방편과 민족 차별의 불평등과 거짓으로 꾸민 통계 숫자에 의하여, 서로 이해가 다른 두 민족 사이에 영원히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구덩이를 더욱 깊게 만드는 오늘의 실적을 보라! 용감하고 밝고 과감한 결단으로 지난날의 잘못을 바로잡고, 참된 이해와 동정에 기초를 둔 우호적인 새 판국을 열어 나가는 것이 피차간에 화를 멀리하고 복을 불러들이는 빠른 길임을 밝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또 울분과 원한이 쌓인 2천만 국민을 위력으로써 구속하는 것은 다만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아닐 뿐 아니라 이로 말미암아 동양의 안전과 위태를 좌우하는 굴대인 4억 중국 사람들의 일본에 대한 두려움과 새암을 갈수록 짙게 하여 그 결과로 동양의 온 판국이 함께 쓰러져 망하는 비참한 운명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니 오늘날 우리 조선 독립은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삶의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을 지지하는 자의 무거운 책임을 다하게 하는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꿈에도 면하지 못하는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또 동양 평화로 그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에 필요한 계단이 되게 하는 것이라. 이 어찌 구구한 감정상의 문제이리요? 아아! 새 천지가 눈앞에 펼쳐지도다. 힘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왔도다. 과거 한 세기에 갈고 닦아 키우고 기른 인도의 정신이 바야흐로 새 문명의 밝아오는 빛을 인류의 역사에 쏘아 비추기 시작하였도다. 새 봄이 온 누리에 찾아들어 만물의 소생을 재촉하는 도다. 얼어붙은 얼음과 찬 눈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이 저 한때의 형세라 하면 화창한 봄바람과 따뜻한 햇볕에 원기와 혈맥을 떨쳐 펴는 것은 이 한때의 형세이니 하늘과 땅에 새 기운이 되돌아오는 때를 맞고 세계 변화의 물결을 탄 우리는 아무 머뭇거릴 것 없으며, 아무 거리낄 것 없도다. 우리의 본디부터 지녀온 자유권을 지켜 풍성한 삶의 즐거움을 실컷 누릴 것이며 우리의 풍부한 독창력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온 누리에 민족의 정화를 맺게 할 것이로다. 우리가 이에 떨쳐 일어나도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더불어 나아가는 도다. 남녀노소 없이 어둡고 답답한 옛 보금자리로 부터 힘차게 뛰쳐나와 삼라만상과 더불어 즐거운 부활을 이루어내게 되도다. 먼 조상들의 신령이 우리를 지키며 전 세계의 움직임이 우리를 밖에서 보호하나니 시작이 곧 성공이라 다만 저 앞의 빛으로 힘차게 나아갈 따름이로다.

 

 

 

▲. 공약 3장.

 

 

 

하나. 오늘 우리들의 이 거사는 정의 인도 생존 번영을 위하는 겨레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

 

하나. 마지막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마지막 한 순간에 다다를 때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시원스럽게 발표하라.

 

하나. 모든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들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조선 나라를 세운 지 사천이백오십이년 되는 해 삼월 초하루.

 

 

 

독립 선언문 (원문)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此)로써 세계만방에 고하야 인류 평등의 대의(大義)를 극명(克明)하며, 차로써 자손만대에 고(誥)하야 민족 자존의 정권(正權)을 영유케 하노라.

 

반만년 역사의 권유를 장(仗)하야 차를 선언함이며, 이천만 민중의 성충(誠忠)을 합하야 차를 포명(佈明)함이며, 민족의 항구 여일한 자유 발전을 위하야 차를 주장함이며, 인류적 양심의 발로에 기인(基因)한 세계 개조의 대기운에 순응 병진하기 위하야 차를 제기함인, 시(是) 1천(千)의 명명(明命)이며, 시대의 대세이며,전인류 공존 동생권의 정당한 발동이라, 천하 하물(荷物)이던지 차를 저지 억제치 못할 지니라.

 

구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의 희생을 작(作)하야 유사 이래 누천에 처음으로 이민족(異民族) 겸제(箝制)의 통고(痛苦)를 상(嘗)한지 금(今)에 십년을 과(過)한지라. 아(我)생존권의 박상(剝喪)됨이 무릇 기하이며, 심령상 발전의 장애됨이 무릇 기하이며,민족적 존영(尊榮)의 훼손됨이 무릇기하이며,신예(新銳)와 독창(獨創)으로써 세계문화의 대조류에 기여 보비(補裨)할 기연(機緣)을 유실(遺失)함이 무릇 기하이뇨. 희(噫)라, 구래의 억울을 선창(宣暢)하려 하면, 시하(時下)의 고통을 파탈(擺脫)하려 하면, 장래의 협위(脅威)를 삼제(芟除)하려 하면, 민족적 양심과 국가적 염의(廉義)의 압축 소잔(銷殘)을 흥분 신장하려 하면, 각개 인격의 정당한 발달을 수(遂)하려 하면 가련한 자제에게 고치적(苦恥的) 재산을 유여(遺與)치 아니하려 하면, 자자 손손의 영구 완전한 경복(慶福)을 도영(導迎) 하려 하면, 최대급무가 민족적 독립을 확실케 함이니, 이천만 각개가 인(人)마다 방촌(方寸)의 인(刃)을 회(懷)하고 인류 통성(通性)과 시대 양심이 정의의 군(軍)과 인도(人道)의 간과(干戈)로써 호원(護援)하는 금일, 금일,오인은 진하야 취(取)하매 하강(何强)을 좌치 못하랴, 퇴(退)하야 작(作)하매 하지(何志)를 전(展)치 못하랴.

 

병자수호조규이래 시시종종(時時種種)의 금석맹약(金石盟約)을 식(食)하얏다 하야 일본의 무신(無信)을 죄하려 아니 하노라,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아(我) 조종세업(祖宗世業)을 식민지시(植民地視)하고, 아 무화민족을 토매인우(土昧人遇)하야, 한갓 정복자의 쾌(快)를 탐할뿐이요, 아의 구원한 사회 기초와 타락한 민족심리를 무시한다 하야 일본의 소의(少義)함을 책하려 아니 하노라, 자기를 책하려하기에 급한 오인(五人)은 타의 원우를 가치 못하노라, 금일 오인의 소임은 다만 자기의 건설이 유(有)할 뿐이요, 결코 타의 파괴에 재(在)치 아니하도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자가(自家)의 신운명을 개척함이오, 결코 구원과 일시적 감정으로서 타를 질축 배척함이 아니로다, 구사상, 구세력에 기미된 일본위정가의 공명적(功名的) 희생이 된 부자연, 우(又) 불합리한 착오 상태를 개선 광정(匡正)하야, 자연, 우(又) 합리한 정경대원 (政經大原)으로 귀환케 함이로다. 당초에 민족적 요구로써 출(出)치아니한 양국 병합의 결과가, 필경 고식적 위압과 차별적 불평(不平)과 통계 숫자상 허식의 하에서 이해 상반한 양 민족 간에 영원히 화동(和同)할수 없는 원구를 거약심조하는 금래 실적을 관하라. 용명과감으로써 구오를 확정하고, 진정한 이해와 동정에 기본한 우호적 신국면을 타개함이 피차간 원화소복하는 첩경임을 명지할 것아닌가, 또 이천만 함분축원 외 민(民)을 위력으로써 구속함은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소야가 아닐뿐 하니라, 차로써 인하야 동양 안위의 주축인 사억만 지나인(支那人)의 일본에 대한 위구와 시의를 갈수록 농후케 하야, 그 결과로 동양 전국이 공도동망(共倒同亡)의 비운을 초치할것이 명(明)하니, 금일 오인의 조선독립은 조선인으로 하야금 정당한 생영을 수케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야금 사로로서 출(出)하야 등양 지지자인 중책을 전(全)케 하는 것이며, 지나(支那)로 하야금 몽매에도 면치 못하는 불안, 공포에서 탈출케 하는 것이며, 또 동양평화로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평화, 인류행복에 필요한 계단이 되게 하는 것이라. 이 어찌 구구한 감정상 문제이리오.

 

아아, 신천지가 안전(眼前)에 전개되도다. 위력의 시대는 거(去)하고 도의의 시대가 래(來)하도다. 과거 전세기(全世紀)에 연다 장양된 인도적 정신이 바야흐로 신문명의 서광을 인류의 역사에 투사하기 시(始)하도다. 신춘이 세계에 래하야 만물의 회소를 최촉하는도다. 동방한설에 호흡을 폐칩한 것이 피일시(彼一時)의 세이라 하면 화풍난양에 기맥을 진서함은 차일시(此一時)의 세이니, 천지의 복운에 제하고 세계의 변조를 승(乘)한 오인은 아모 주저할 것 없으며, 아도 기탄할 것없도다. 아의 공유한 자유권을 호전하야 생왕의 낙을 포항할 것이며, 아의 자족한 독창력을 발휘하야 춘만한 대계(大界)에 민족적 정화를 결뉴(結紐) 할지로다.

 

오등(吾等)이 자에 분기하도다. 양심이 아와 동존(同存)하며 진리가 아와 병진(兵進)하는도다. 남녀노소 없이 음울한 고소(古巢)로서 활발히 기래하야 만휘군상으로 더부러 흔쾌한 부활을 성수하게 되도다. 천택세(千宅世) 조령이 오등을 음우하며 전세계 기운이 오등을 외호하나니, 착수가 곧 성공이라. 다만 전두(前頭)의 광명으로 맥진할 따름인저.

 

 

 

독립선언문 해석자료

 

우리는 여기에 우리 조선이 독립된 나라인 것과 조선 사람이 자주하는 국민인 것을 선언하노라. 이것으로써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밝히며 이것으로써 자손만대에 알려 겨레가 스스로 존재하는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하노라.

 

반만년 역사의 권위를 의지하며 이것을 선언하는 터이며, 이천만 민중의 중성을 모아 이것을 널리 알리는 터이며, 사람된 양심의 발로로 말미암은 세계 개조의 큰 기운에 순응해 나가기 위하여 이것을 드러내는 터이니, 이는 하늘의 명령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온 인류가 더불어 같이 살아갈 권리의 정당한 발동이므로, 하늘 아래 그 무엇도 이것을 막고 누르지 못할 것이라.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의 희생을 당하여, 역사 있은 지 여러 천년의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억눌려 고통을 겪은 지 이제 10년이 되도다. 우리가 생존권 마저 빼앗긴 일이 무릇 얼마며, 새롭고 날카로운 기백과 독창성을 가지고 세계문화의 큰 물결에 이바지 할 기회를 잃은 일이 무릇 얼마인가!

 

오호! 예로부터의 억울함을 풀어 보려면, 지금의 괴로움을 벗어나려면, 앞으로의 두려움을 없이 하려면, 겨레의 양심과 나라의 도의가 짓눌려지는 것을 다시 살려 키우려면, 사람마다 인격을 옳게 가꾸어 나가려면, 불쌍한 아들 딸들에게 부끄러운 유산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자자손손이 길이 완전한 행복을 누리게 하려면 우선 급한 것이 겨레의 독립인 것을 뚜렷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천만 각자가 사람마다 마음속의 칼날을 품으니 인류의 공통된 성품과 시대의 양심이 정의의 군대가 되고, 인륜과 도덕이 무기가 되어 우리를 지켜 주도다. 우리가 나아가 이것을 얻고자 하는데 어떤 힘인들 꺽지 못하며 물러서 계획을 세우는데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할까?

 

병자수호조약 이후, 시시때때로 굳게 맺은 약속을 저버렸다 하여 일본의 신의 없음을 탓하려 하지 아니 하노라.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인은 실생활에서 우리 조상 때부터 물려받은 이 터전을 식민지로 삼고, 우리 문화민족을 마치 미개한 사람들처럼 대하여 한갖 정복의 쾌감을 탐낼 뿐이요, 우리의 영구한 사회의 기틀과 뛰어난 이 겨레의 마음가짐을 무시한다 하여, 일본의 옳지 못함을 책망하여 하지 아니하노라. 자기를 일깨우기에 바쁜 우리에게는 옛부터의 잘못을 따져볼 겨를도 없노라. 오늘 우리의 할 일은 다만 나를 바로 잡는데 있을 뿐 결코 남을 헐뜯는 데 있지 아니 하도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에 따라 자기 집의 운명을 새롭게 개척하는 일일 뿐 결코 묵은 원한과 일시의 감정을 가지고 남을 시기하고 배척하는 일이 아니로다. 낡은 사상과 낡은 세력에 얽매인 일본의 위정자의 공명심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한 이 그릇된 현실을 고쳐서 바로잡아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올바른 바탕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라.

 

처음부터 이 겨레가 원해서 된 일이 아닌 두 나라의 합병의 결과는 마침내 억압으로 이루어진 당장의 편안함과, 차별에서 오는 고르지 못함과, 거짓된 통계 숫자 때문에 이해가 서로 엇갈린 두 민족 사이에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도랑이 날이 갈수록 깊이 패이는 지금까지의 사정을 한번 살펴 보라. 용감하게 옛 잘못을 고쳐 잡고 참된 이해와 동정에 바탕한 우호적인 새 시대를 마련하는 것이 서로 화를 멀리하고 복을 불러들이는 가까운 길인 것을 알아야 할 것이 아니냐! 또한 울분과 원한 쌓이고 쌓인 이천만 국민을 힘으로 붙잡아 묶어 둔다는 것은 다만 동양의 영원한 평화를 보장하는 노릇이 아닐 뿐 아니라 이것이 동양의 평안함과 위태함을 좌우하는 사억 중국 사람들의 일본에 대한 두려움과 새암을 갈수록 짙어지게 하여 그 결과로 동양 전체가 함께 쓰러져 망하는 비운을 초래할 것이 뻔한 터에 오늘 우리의 조선 독립은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을 버티고 나아갈 이로서의 무거운 책임을 다하게 하는 것이며. 또 동양의 평화가 중요한 일부가 되는 세계평화와 인류복지에 꼭 있어야 할 단계가 되게 하는 것이라. 이것이 어찌 감정상의 문제이겠느냐!

 

아아, 새 하늘과 새 땅이 눈앞에 펼쳐지누나! 힘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누나! 지나간 세계를 통하여 깍고 다듬어 키워온 인도적 정신이 바야흐로 새 문명의 서광을 인류의 역사 위에 던지기 시작하누나! 새 봄이 온 누리에 찾아 들어 만물의 소생을 재촉하누나! 얼음과 찬 눈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것이 저 한 때의 시세였다면, 온화한 바람, 따뜻한 햇볕에 서로 통하는 낌새가 다시 움직이는 것은 이 한 때의 시세이니 하늘과 땅에 새 기운이 돌아오는 마당에 세계의 변하는 물결을 타는 우리는 아무 주저할 것도, 아무 거리낄 것도 없도다.

 

우리가 본디 타고난 자유권을 지켜 풍성한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며, 우리가 넉넉히 지닌 바 독창적 능력을 발휘하여 봄기운이 가득한 온누리에 겨레의 뛰어남을 꽃 피우리라. 우리는 그래서 분발하는 바이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고, 진리가 우리와 더불어 전진하나니 남자, 여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음침한 옛 집에서 힘차게 뛰쳐나와 삼라만상과 더불어 즐거운 부활을 이룩하게 되누나. 천만세 조상들의 넋이 우리를 안으로 지키고, 전 세계의 움직임이 우리를 밖으로 보호하나니 일에 손을 대면 곧 성공을 이룩할 것이라. 다만 저 앞의 빛을 따라 전진할 따름이로다.

 

 

 

공 약 삼 장

 

ㅡ 오늘 우리들의 이 거사는 정의, 인도, 생존, 번영을 찾는 겨레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고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

 

ㅡ 마지막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마지막 한 순간에 다다를 때까지 민족의

 

   올바른 의사를 시원스럽게 발표하라.

 

ㅡ 모든 행동은 먼저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들의 주장과 태도가 어디까지나

 

   공명정대하게 하라.

 

나라를 세운지 사천이백오십이년 되는 해 삼월 초하루

 

 

 

 

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용성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나용환 나인협 양전백

 

양한묵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훈 이종훈

 

이종일 임예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흥식

 

신석구 오세창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최 린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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