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 라이프/우리의 자연환경

은평뉴타운(폭포동)

자연산 2015. 9. 19. 07:00

 

 

 

 

 

 

 

 

 

 

 

 

 

 

 

 

 

 

<  아침 출근길에 담아보다. 2015.9.16 >

 

 

< 서울시 은평구 은평뉴타운의 마을 이름 유래설명 >


 

상림골(桑林谷)

진관내동 518번지 민가 마당 한 구석에 수백 년 된 향나무를 상나무라고 부르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지금도 향나무가 남아있는데, 이 향나무 옆에는 우물이 하나 있어 물맛이 늘 향내가 듬뿍 배인 유명한 우물이다. 옛날에는 인근 동리 사람들이 아침부터 와서 바가지로 떠 마시고, 통에 담아서 집으로 가지고 갔다고 한다. 옛 이름은 ‘상리꼴’이다.

 

우물골

과거 뉴타운 공사 전 이 마을에는 명성황후의 원당(願堂)인 금성당(錦城堂)이 있었는데, 현재까지 잘 남아 있다. 금성당은 1880년대 초반 이전에 지은 금성대군(1426-1457)을 주신으로 모시는 굿당으로 2008년 7월 22일 국가지정문화재인 중요민속자료 제258호로 지정된 바 있다.

 

마고정(馬雇亭)

마고정의 유래는 조선시대 후기에 역마고립제(驛馬雇立制)라 하여 민간의 말을 세내어 국가에 빌려주던 고마청(雇馬廳)이 와전되어 잘못 전해진 것이다. 지금의 은평뉴타운 2지구(3단지)에 고마청이 있었다고 해서 유래한 지명이다.

 

폭포동(瀑布洞)

조선시대 이 마을에 향림폭포(香林瀑布)가 있었다고 하여 생겨난 지명이다. 현재도 선림사(禪林寺) 뒤쪽으로 비가오면 폭포가 흘러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조선 후기 고지도인 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에 “香林瀑(향림폭)”이라는 표기가 보이고 있고, 폭포동 김해김씨 증공조참의(贈工曹參議) 김시휘(金時輝) 묘표에 “楊州神穴面瀑布洞(양주 신혈면 폭포동)”에 장사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제각말(祭閣里)/잿말

조선 25대 철종(哲宗) 임금이 조부(祖父)인 은언군(恩彦君)의 묘를 마을 뒷산인 이말산에 조성하고 많은 제각(祭閣 : 재실)을 세웠다고 하여 유래한 지명이다. 일제시대인 1916년(대정 5년)에 작성된 고지도에 ‘祭閣里(제각리)’라는 표기가 보인다. 잿말의 어원은 철종대왕이 조부인 은언군의 시제(時祭)를 지내러 왔다가 이 일대의 성황당 고개에서 편히 쉬었다고 하여 ‘식영(息寧)고개’라는 지명이 생겼고, 재말이란 바로 식영고개 넘어 마을, 즉 재 넘어 마을이라 하여 생겨난 이름이라고 한다. 혹은 영산군파(寧山君派)의 재실(齋室)이 있었다고 하여 생겨난 지명이라고도 하는데, 일제시대인 1916년(대정 5년)에 작성된 고지도에 ‘齋村(재촌)’이라는 표기가 보인다.


 

못자리골(淵寺里못절터)

옛날 이곳에 있던 절 경내에 커다란 연못이 있어 백성들이 ‘못절’이라고 불러왔으나, 이후 절은 없어지고 연못만이 남아 ‘못절터’라고 부르다가 다시 동명화 되어 ‘못자리골’로 불려졌다. 지금은 논으로 되어있고 그 옛날 절터임을 추측할 수 있는 기왓장이 간혹 출토되고 있으나 어느절 연못인지는 알수 없다. 조선시대에는 양주 연사리(淵寺里)로 표기되었는데, 은평뉴타운 전에는 마을 가운데 물이 고인 늪지인 못자리가 있었다. 마을 뒷산인 이말산(莉茉山) 칠원윤씨 동지중추부사 윤용(尹鎔)의 묘표에 인조 9년(1631년) “楊州郡神穴里澤寺(양주군 신혈리 택사)에 묘를 썼다는 기록이 보이고, 일제시대인 1916년(대정 5년)에 작성 된 고지도에 연사리(淵寺里)라는 표기가 보인다.


 

탑골

조선시대 이곳에 탑이 많았으므로 생겨난 지명이다. 현재도 흥창사(興昌寺)와 자씨각(慈氏閣) 등 불교관련 유적이 남아 있다.


 

방아다리골

곳 마을의 형상이 마치 디딜방아의 다리처럼 골짜기가 Y자형으로 길게 뻗어 있어 생겨난 지명이다.

 

물푸레골

과거 구파발 대장간에서 농기구에 쓰이는 자루로 사용하던 물푸레나무가 많이 서식하여 불려지게 된 지명이다.

출처(은평문화원)

http://eunpyeong.kccf.or.kr/

 

 

 

> 관광지 > 관광지
은평 마을 이름의 유래
은평문화원 201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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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번동(碌磻洞)녹번동(碌磻洞)이란 명칭은 녹번현(碌磻峴)에서 연유한다. 녹번고개(녹번현)에선 아직도 뼈 생성에 좋은 효과가 있는 산골(生骨)이 생산되고 있다.

 

불광동(佛光洞)

‘불광(佛光)’이란 명칭은 이곳에 있던 불광사에서 유래. 근처에 바위와 크고 작은 사찰이 많아 부처의 서광이 서려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갈현동(葛峴洞)

갈고개라는 말에서 유래. 전하여 오는 말로는 이 일대에 칡이 많아서 갓을 만드는 원료가 되었기 때문에 칡고개, 갈고개, 가루게라 불렸다.

 

구산동(龜山洞)

경기도와 도경계를 이루는 마을 뒷산의 산모양이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궁말

궁중에서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일을 못하는 노상궁은 궁궐에서 10리 이내에 즉 궁말에 거주하게 하였는데 그 곳이 현재 구산동 선진운수 종점이다. 70년 초까지만해도 십인홍빈지묘 등 천상궁 김상궁의 묘소가 있었다.

 

대조동(大棗洞)

마을에 대추나무가 많았으므로 ‘큰 대추나무골’이라 한 것을 한자로 대조동(大棗洞)이라 부르게 되었다.

 

응암동(鷹巖洞)

응암(鷹岩)이란 명칭은 마을 뒤 백련산 기슭에 매가 앉은 모양의 커다란 바위가 있어 ’매바위골‘이라 한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역촌동(驛村洞)

‘역촌(驛村)’이라는 명칭은 이곳에 연서역(延曙驛)이 있었으므로 ‘역말’ 또는 ‘역촌’이라 한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돌곶이고개

역촌동 역말길에 있는 고개로, 돌곶이 뒤에 있으므로 돌곶이고개 또는 석관현(石串峴)이라고도 하였다.

신사동(新寺洞)

‘신사(新寺)’라는 명칭은 옛날 이 마을에 새 절(新寺)이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현재 새 절이 있었던 정확한 위치나 절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증산동(繒山洞)

‘증산(繒山)’이라는 명칭은 이 마을이 산 모양이 시루와 같은 시루봉 아래 있으므로 ‘시루메(뫼, 甑山)’라 하였는데, 시루는 밑이 뚫려 물이 새므로 좋지 않다 하여 아름다운 비단의 뜻을 빌어서 ‘증산(繒山)’이라 한다.

 

수색동(水色洞)

‘수색(水色)’이라는 명칭은 이 일대가 한강 하류로서 옛부터 물과 인연이 깊고, 수색동 앞 들 건너편에 있는 물의 풍치(風致)가 좋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옛 이름은 물이치, 혹은 물치라고도 하였다.

 

진관동(津寬洞)

‘진관동(津寬洞)’이라는 명칭은 진관사(津寬寺)란 절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1973년 서울시에 편입되면서 진관동을 두었으나, 인구의 증가로 진관사를 중심으로 뒤쪽을 내동, 앞쪽을 외동이라 하였다가 2007년 8월 진관동으로 다시 합쳐졌다.

 

구파발동(舊擺撥洞)

조선조에는 ‘검바윗말’ 또는 ‘금암리(黔巖里)’로 불리던 곳이다. 서울 서북부(西北部)에 위치한 한양(漢陽)의 관문으로서, 중국을 오가는 사신이나 상인들이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곳이었다. 이곳이 금암리로 불리게 된 것은 지금의 구파발 인공폭포 중 산성폭포가 위치한 진관동 산 68번지에 있던 검은 바위(黔巖)에서 유래한다. 하지만 인공폭포 조성 과정에서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구파발(舊擺撥)’이라는 명칭은 이 지역이 옛부터 벽제관(碧蹄館 ; 찰방제도시의 역)으로 통하는 길목이어서 조선시대 공문서를 신속하게 전달하기 위해 설치한 역참(驛站)인 금암참(黔巖站)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