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 라이프/자연과 나의 만남

백화산(충남 태안군)

자연산 2015. 9. 24. 22:00

 

 

* 태안 백화산 등산안내도

 

 

* 태안 백화산(해발 284m)정상

 

 

* 태안 백화산성

 

 

* 백화산에서 바라본 태안읍내

 

 

 

 

 

 

 

 

 

 

 

 

 

 

 

 

 

 

 

 

* 백화산 봉화대터

 

 

* 백화산 설명

 

 

* 태안읍내 전경

 

 

* 태안 마애삼존불(국보 제307호, 태을암에 있음)

 

 

 

 

 

* 태안 마애삼존불 설명도

 

 

 

 

 

 * 백두대간. 정맥지도(하)

 

 

 

* 제목 : 추석 전에 미리 돌아본 백화산

* 일시 :  2015.9.20(일). 16:05~17:20 

* 설명 : 금북정맥(속리산 - 장현산 - 국사봉 - 장봉산 -

백화산 - 안흥진)에 해당하는 백화산

 

정간과 13정맥들

장백정간(長白正幹)
북쪽으로 두만강, 남쪽으로 어랑천·수성천의 분수령이다. 백두대간의 원산 설령봉에서 일어나 만탑봉(2,205m), 괘상봉(2,136m), 궤상봉(2,541m), 관모봉(2,541m), 도정산(2,201m)을 지나 함경북도 내륙을 서북향으로 관통하는 산줄기이다. 도정산 이후 산세가 죽어들어 이후 고성산(1,756m), 차유령, 백사봉(1,138m), 송진산(1,164m)으로 이어져 두만강 하구 서수라곶에서 끝을 맺는다.

낙남정맥(洛南正脈)
북쪽으로 줄곧 낙동강을 받드는 낙남정맥은 남부해안지방의 분계선으로 생활문화와 식생, 특이한 기후구를 형성시키는 중요한 산줄기이다.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하여 남하하다 옥산(614m)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대곡산(543m), 여항산(744m), 무학산(763m), 구룡산(434m), 대암산(655m)을 거쳐 낙동강 하구를 지키는 분산(盆山)에서 끝난다.

청북정맥(淸北正脈)
평안북도 내륙을 관통하며 압록강의 남쪽 울타리를 이룬다. 웅어수산에서 시작하여 낭림산을 지나 서쪽으로 흐른다. 갑현령(1,001m), 적유령(964m), 삼봉산(1,585m), 단풍덕산(1,154m)를 지나 온정령(574m)에서 산세가 수그러들어 신의주 남쪽 압록강 하구의 미곶산에서 끝난다.

청남정맥(淸南正脈)
웅어수산에서 시작하여 낭림산이 첫산이며 청천강의 남쪽 유역과 대동강의 북쪽 유역을 경계하는 분수령이다. 청남정맥의 으뜸산은 묘향산(1,365m)이며 이후 산줄기는 용문산(1,180m), 서래봉(451m), 강룡산(446m), 만덕산(243m), 광동산(396m)을 지나 용강의 남포에서 대동강 하구 광량진으로 빠진다.

해서정맥(海西正脈)
우리나라 북부와 중부지방의 문화권역을 경계하고 있는 분수령이다. 백두대간 두류산에서 시작하여 서남쪽 개연산에 이르러 다시 북상하다 언진산(1,120m)에서부터 남하하기 시작하여 멸악산(816m) 지나 서해의 장산곶에서 끝난다.

임진북예성남정맥(臨津北禮成南正脈)
황해도의 오른쪽 울타리를 이루며 북쪽으로는 임진강, 남쪽으로 예성강의 분수령이다. 해서정맥의 화개산에서 시작하여 학봉산(664m), 수룡산(717m), 천마산(762m), 송악산(488m)을 지나 정맥의 끝은 임진강과 한강의 합수점 즉 개성의 남산인 진봉산(310m)이다.

한북정맥(漢北正脈)
북쪽으로 임진강 남쪽으로 한강의 분수령이 된다. 백봉에서 시작한 한북정맥은 백암산(1,110m), 법수령을 지나 휴전선 가까운 오성산(1,062m), 철책 넘어 대성산으로 이어진다. 포천 백운산(904m) 운악산(936m), 서울 도봉·북한산(837m), 고봉산(208m)을 지나 임진강과 한강의합류 지점인 교하의 장명산(102m)에서 끝난다.

낙동정맥(洛東正脈)
낙동강의 동쪽을 따르는 산줄기로 동해안 지방의 담장이다. 매봉산에서 시작하여 울진 백병산(1,259m) 통고산(1,067m), 울진 백암산(1,004m), 청송 주왕산(720m), 경주 단석산(829m), 울산 가지산(1,240m) 신불산(1,209m), 부산 금정산(802m)을 지나 백양산(642m)을 넘어 다대포의 몰운대에서 끝난다.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
한강과 금강을 나누는 분수령이다. 속리산 천황봉(1,508m)에서 시작하여 말티고개, 선도산(547m), 상당산성, 좌구산(657m), 보현산(481m)을 지나 칠현산(516m)에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과 갈라지면서 한남금북정맥은 끝이 난다.

한남정맥(漢南正脈)
한강 유역과 경기 서해안 지역을 분계한다. 한남금북정맥의 칠현산 북쪽 2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칠장산(492m)에서 시작된다. 백운산, 보개산, 수원 광교산(582m), 안양 수리산(395m)을 넘으며 김포평야의 낮은 등성이와 들판을 누비다 계양산(395m), 가현산(215m) 지나 강화도 앞 문수산성에서 끝맺는다.

금북정맥(錦北正脈)
금강의 북쪽 울타리이다. 한남정맥과 헤어진후 칠현산(516m), 안성 서운산, 천안 흑성산(519m), 아산 광덕산(699m), 청양 일월산(560m), 예산 수덕산(495m)을 지난다. 산줄기는 예산 가야산(678m)에서 멈칫거리다 성왕산(252m), 백화산(284m)를 거쳐 태안반도로 들어 반도의 끝 안흥진에서 끝을 맺는다.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이다. 장수 영취산(1,076m)에서 시작하여 장안산(1,237m) 수분현(530m) 팔공산(1,151m), 임실 성수산(1,059m), 진안 마이산(667m), 진안 부귀산(806m)에서 끝난다.

금남정맥(錦南正脈)
전주의 동쪽 마이산(667m)에서 북으로 치달아 대둔산(878m), 계룡산(828m)을 거친후 서쪽으로 망월산을 지나 부소산 조룡대에서 끝난다. 금강의 온전한 남쪽 울타리를 이루지 못하는 이 산줄기는 운장산 지나 왕사봉에서 남당산-까치봉-천호봉-미력산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호남정맥(湖南正脈)
낙남정맥과 함께 우리나라 남부해안문화권을 구획하는 의미있는 경계선이다. 정맥의 동쪽은 섬진강, 서쪽은 만경강 동진강 영산강 탐진강이다. 금남호남정맥에서 갈래친후 강진 만덕산(762m)을 처음 만나고 이후 내장산(763m), 추월산(729m), 무등산(1,187m), 제암산(779m), 조계산(884m) 등 남도의 큰산을 지나 광양 백운산(1,218m)이 끝이다. 백운산에서 아쉬운 산자락의 여운은 백운산 남쪽을 달려 섬진강을 휘감으며 망덕산(197m)에서 비로소 끝난다.

출처

http://www.angangi.com/

 

 

원북면의 전설

파워boolingoo
2006.08.12.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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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 암(鶴岩)

학암이란 글자 그대로 바위의 생김새가 학같이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이 학암은 원북면 방갈리(遠北面 防葛里) 2구 가시내의 학암포(謔岩浦)에 있다. 이 학암포에는 큰 분점(大盆店)과 작은 분점(小盆店)이 있는데. 큰 분점의 서쪽 끝(西端)낭떠러지 용낭굴위의 바위를 일컫는 것이다. 학암포란 명칭은 이 학암에서 연유된 것인데, 1968년 7월 27일 해수욕장의 개장(開場)과 더불어 붙여진 명칭이다. 그 이전에는 분점포(盆店捕)였다. 이 분점포는 본래 조선조(朝鮮朝)때 중국(明)과의 교역을 하던 무역항(貿易港)이었다.

양국은 여러 가지 물품을 교역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질그릇(동이 또는 항아리 )를 주로 수출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60여년전만해도 질그릇을 굽던 가마터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어 지난날을 회상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자취조차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질그릇을 만들어 수출한데서 포구(浦口)의 명칭을 분점(盆店)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인데, 즉 동이를 만들어 외국에 수출하는 한편 일부는 내수용(內需用)으로 가게서 시판(市販)하였으니. 그 이름 그대로 동이분(盆)자와 가게 점(店)자를 붙이어 분점이라고 명명한 것은 매우 설득력(說得力)있는 명칭이 아닐 수 없다.

이같이 분점포가 무역항으로서 활기가 넘치고 따라서 근해의 어업 기지로서 중선(重船)을 비롯한 많은 어선(漁船)들의 출입이 잦았던 명실 상부한 어항(漁港)이기도 했다.

특히 어선들이 어로 작업을 마치고 만선(滿船)으로 입항할 때의 모습은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오색 영롱한 뱃기를 달고 입항하는데, 깃발의 개수를 보고 그 배의 어획량(漁獲量)여부와 또는 수익금(收益金)등을 점칠수 있었던 것이다.

이같이 분점포구가 활기에 넘치고 있을 때, 원근 각지(遠近各地)에서 많은 사람들이 드나 들었더니, 또한 이 포구는 관광지로서의 역할도 겸했던 것이다.따라서 큰 분점의 학암 부근에는 봄철의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필무렵이면 이곳으로 꽃놀이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서당의 훈장(訓長)은 학생을 데리고 와서 글을 짓고 즐기는가 하면, 지방의 유지 및 유생(儒生)들은 이 학암 옆에 와서 꽃놀이를 하면서 운자(韻字)를 내어 한시(漢詩)를 짓고 읊조리긷 하였다. 비록 시인이 아니더라도 이 아름다운 경치에 접하면 저절로 시상이 떠오르지 않을수 없는 곳이다.

학암 위에서 바라보면 사방이 탁 트인 것이 상쾌한 마음을 자아내게 하고 특히 학암 앞의 푸른 바다에 오가는 어선들의 황포 돛대는,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으니 이 같은 절정에서 유생들이 시를 짓고 읊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없었으리라. 450년 전만해도 바위에 써놓고 한시(漢詩)가 눈에 띄었는데, 지금은 풍우(風雨)에 깎기어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또한 학암 밑에 있는 용낭굴을 비롯하여 주변의 기암괴석(奇岩怪石)의 절경은 마치 해금강을 방불할 정도로 아름다우니 이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저절로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일찍 금송박승원(琴松 朴昇遠)은 관송팔경(貫松 八景)에서 학암(鶴岩)을 이렇게 읊었다.

금지학암(金池 鶴岩)이란 시제(詩題)로 또한 여름철에 만발하는 학암포 해안가 백사장의 해당화(海棠花)꽃은 이 곳의 명물이 아닐 수없다.

명사십리 해당화(明沙十里 海棠花)란 말이 이곳을 두고 일컫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앞에서 열거한 박승원의 관송 팔경에서 명소해당(明沙 海棠)이란 시제로 이렇게 읊고 있다.

 

 

2. 각시 바위

각시 바위는 원북면 신두리 3구의 백사장 쪽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산기슭에 있다. 이 바위는 큰 바위와 주변의 작은 바위들로 이루어져있는데 이를 각시 바위라 부르게 된 연유는 다음과 같다. 옛날 어느 아가씨가 이 동네로 시집을 와서 살고 있었는데, 시집살이의 구박이 심하고, 갈수록 고된 생활만 쌓이고 쌓였다. 몸은 점차 쇠약해지고, 앞으로의 희망 마저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으니, 그녀에게는 오로지 괴로움과 슬픔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매일 저녁 이 곳으로 나와 슬피울다가 집에 들어가곤 하였다. 그런데 이 같은 일이 계속되던 어느날, 시어머니의 혹독한 구박에 슬픔을 이기지 못한 새색시가 구슬프게 울다가 쓰러져 죽고 말았는데, 시신(屍身)이 변하여 바위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일이 생긴 뒤부터 마을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 바위를 가리켜 각시 바위(달리 치마바위라고도 부른다) 라고 부르게되었고,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한다. 그런데 이 바위를 건드리면 이변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바위를 건드린 사람은 물론 그의 측근자까지도 화를 입는 것이었다. 어느날, 이 마을 청년이 이 곳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가 무의식중에 각시 바위를 건드린 것이 화근이 되어 집에 돌아와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그후 이 청년의 동생까지 까닭없이 앓아 눕더니 일어나지도 못하고 신음만하다가 죽으니 이 집의 대가 끊기고 말았다. 이 같은 일이 일어난 뒤부터 동네 사람들은 이 각시 바위 근처는 물론 멀리에서 조차 그 바위를 바라보는 것을 꺼려했다 한다. 각시 바위가 있는 이 곳에는 서해의 하와이로 불리는 신두리 해수욕장이 있는데, 탁트인 백사장과 깊고 푸른 바닷물이 태평양의 한 바닷가를 연상케 한다. 모래가 깊은 백사장은 꼬마들이 모래성을 쌓기에 안성맞춤이다. 또한 해수욕장 주변은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조용히 자리하고 있는 농촌 풍경을 볼 수 있어 도시인들이 향수에 젓어 드는 곳이기도 하다.

 

3. 잿 말

농촌 지역일수록 법정 지명(法定地名)의 호칭보다는 통속적인 자연부락명으로 부르는 것이 더욱 친근감이 있고 정서적이어서 좋다. 또한 이 자연 부락의 명칭은 그 유래가 매우 다채로와서 많은 흥미를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지명 연구에는 필수 불가결의 조건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 태안군도 예외가 아니어서 많은 자연 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명칭이 무려 1,024개에 이르고 있다. 이제 기술하고자 하는『잿말』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 잿말이란 마을은 원북면 이곡리 2구에 있는 자연 부락의 명칭이다. 옛날에는 그러니까 간척 사업으로 인한 방조제가 축조되기 전까지는-바닷물이 이 잿말 앞까지 들어 왔었다. 그런데 이 마을의 입구에는 커다란 차돌 바위가 우뚝 솟아 있어 차돌 마을이라 부를 정도로 상징적이었다. 이 차돌 바위 가까이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한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욕심이 많기로 이름난 구두쇠여서 노랭이 영감으로 불리었다. 이 영감은 남에게서 받는 것만을 좋아할 뿐, 지푸라기 하나라도 남에게 줄줄 모르는 지독한 구두쇠였기 때문에, 이집을 찾아오는 시주승 역시 주인으로부터 시주는 커녕 번번히 문전 박대를 당하고 마는 것이었다. 이에 은근히 화가난 스님들이 어느날 시주차 이 마을의 입구를 지나가다 우연히 이 욕심장이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이때 시주승은 이 노인에게 말하기를 “이 마을의 지형을 살펴보니 저기 입구에 우뚝 솟은 차돌바위를 깨뜨려 버리면 이 마을은 물론 영감께서는 이 마을 제일가는 갑부가 될 것이오.” 하고는 총총 걸음으로 건너 마을로 사라져 갔다. 이 말을 들은 욕심꾸러기 영감은 은근히 호기심이 생겨서 다음날 아침에 인부를 동원하여 차돌을 깨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약 대여섯 시간쯤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데, 갑자기 깨어지는 돌이 재로 변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광경에 놀란 인부들은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입을 다문채 서 있었다. 침묵만 흐르고 있었다. 웬지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쳐갔다. 인부들은 작업을 중지하고 모두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부터 이 마을에 갑자기 가난이 닥쳐오고, 욕심꾸러기 영감도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같은 일이 있은 뒤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차돌이 부서져 재로 변했으니 이 마을을『잿마을』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명칭이 오래도록 이어져 내려왔다. 그런데 수십년 전래되어 오면서『잿마을』이『잿말』로 줄어서 지금은 잿말로 불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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