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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JAMES)소개

자연산 2019. 6. 19. 10:20

신약성서 소개

야고보서 소개

 

야고보서의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이론이 분분하나,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형제이면서 예루살렘교회의 리더였던 사도 야고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쓰여진 연대는 저자에 대한 의견만큼이나 추측이 다양하기에 확실하게 말하기 힘듭니다.

 

야고보서의 스타일은 서신 형태지만 공석에서 성도들에게 읽혀지도록 쓰여진 현대의 강의나 설교를 듣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서신의 수신자는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목회할 때 있었던 형제, 자매들이었습니다. 이제는 사방으로 흩어져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여러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야고보가 담임 목사의 심정으로 서신을 쓰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루살렘을 떠나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에 대한 핍박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1장). 서신은 그러한 핍박의 외부적 요소보다는 그들 간에 생겨나는 내부 문제들에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합니다. 그들 가운데 졸부들이 생겨났고(2장과 5장), 신앙은 형식화 되어가고 있었으며(2장), 경제적인 이유로 성도 간에 차별이 생겨나면서 그들 사이에 사랑이 꺼져가고 있었습니다(2장). 이러한 모습은 현대교회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서로를 향한 독설(3장)과 교제 상실(4장)까지 더해져 형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기독교가 공동체로 서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야고보는 이런 모습들을 책망하며 교회가 회복해야 할 본래의 성숙한 모습들을 강조합니다. 야고보서는 아무리 거룩한 교회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세속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우리는 이러한 동일한 일이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야고보서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사도바울은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된다(롬 3:28)고 주장했는데, 야고보사도는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약 2:24)라고 말해서 겉으로 보기에 서로 대치된 주장을 하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문맥을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두 사도는 서로 다른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구원을 얻으려면 율법을 지켜야만 한다는 유대교의 주장을 향해 ‘오직 믿음’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야고보 사도는 구원 받은 자들이 지나치게 실천이나 행함을 무시하여 믿음을 단지 교리를 인정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구원받았지만 삶과 행위가 불신자들보다 못한 모습으로 전락해가는 자들을 향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구원을 얻기 위해 한 행동은 무용하다고 보는 것이고, 야고보는 믿고 나서 그에 걸맞은 행동이 없다면 구원을 얻었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바울이 지목하는 칭의(justification)는 구원의 시작 단계, 곧 죄와 사망의 영역에서 거룩함과 생명의 영역으로 옮겨 나타나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초기 단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말합니다. 반면에 야고보 사도는 히브리적인 개념으로 마지막 때에 궁극적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 선언(declaration)’을 의도한 것으로 평소 삶에서 믿음을 얼마나 행동으로 실천했는지 여부에 따라 마지막 심판 때에 최후의 평가가 내려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결론적으로 야고보사도는 열매도 없고 행동도 없는 그리스도인, 소위 ‘무늬만’ 기독교인인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사도바울과 야고보의 주장은 서로 보완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의 관점 차이를 신학적 용어로 설명하자면, 바울은 ‘의로움의 전가’(imputation)를 말하고 있고, 야고보는 ‘의로움의 선언’(declaration)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지나치게 공부만 하고 놀지 않는 아이에게는 ‘좀 놀아라’라고 조언하면서, 놀기만 하는 아이에게는 ‘공부 좀 해라’라고 말한다고 해서 의견이 바뀐 것이 아니라는 주장과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서로 강조점이 다를 뿐이지 균형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면에서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교회 역사를 보더라도 루터의 종교개혁 때, 구원에 대해 잘못된 이해가 지배적이었던 상황에서 ‘믿음‘에 강조를 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말씀들이 더욱 중요하게 부각되었기에 루터는 야고보서를 그다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종교 개혁 시대가 지나고 새롭게 개혁되었던 웨슬리 시대의 교회가 다시금 생명력을 잃어버리자 ’행함‘에 강조를 둔 야고보서 말씀이 부각되었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면(칭의) 칭의의 신분에 걸맞은 삶을 사는 것(행함)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야고보서의 메시지는 행함의 신학을 많이 잃어버린 현대교회에 많은 경종과 울림을 줄 것입니다.

 

•저자 : 김윤희 (FWIA대표, 전 횃불트리니티 구약학 교수)

•연기자 : 신범식(야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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