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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족두리봉)

자연산 2007. 2. 4. 19:30

 

 

* 제목 : 북한산의 밤

* 일시 : 2007. 2.  4(일). (17:05~19:00)

* 배경 : 북한산(족두리봉)에서의  검도포즈 (머리치기) 

* 등산경로 : 불광통제소 - 족두리봉 - 불광통제소

* 동반자 : 아내

* 등산거리 : 2.6km

 

* 설명(1)  

          - 북한산의 주요 봉우리별 해발고도(m)

             백운대(836.5), 인수봉(810.5), 만경대(799.5),

             노적봉(716), 시단봉(607), 영봉(604), 상장봉(543),

             원효봉(505), 의상봉(503), 용출봉(571), 용혈봉(581),

             증취봉(593), 나월봉(638), 나한봉(665 - 715.7),

             문수봉(727), 보현봉(714), 형제봉(467), 응봉(323)

             비봉(560), 향로봉(535), 족두리봉(수리봉)(367)

 

         - 북한산 일반 현황           

           서울의 북쪽에 위치한 북한산국립공원(北漢山國立公園)은

           1983년 4월 2일 국내에서 15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으로

           북한산과 도봉산 전역을 포함한 총 면적 80.669제곱킬로

           메터이며, 행정구역상 동남쪽은 서울특별시 도봉구,강북구

           , 성북구, 종로구, 서대문구, 은평구 등 6개구와 북서쪽

           으로는 경기도 고양시, 양주시, 의정부시에 걸쳐있다.

 

           한산, 화산, 삼각산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던 것을

           북한산으로 바꾸게 된 것은 조선조 숙종때 북한산성을

           축성한 뒤 부터라 추정되며 신라 진흥왕이 나라안을

           순행하며 영토의 경계를 정하고 그 사적을 새긴 진흥왕

           순수비(비봉)도 북한산에 세웠다.

 

           북한산은 지형적으로 볼 때 북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이령(소귀고개)을 경계로

           하여 북쪽으로는 도봉산 지역, 남쪽으로는 북한산 지역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북한산성의 둘레는 9.7km 가량되고 이중 성채만의 총

           길이는 8.4km에 이르며 성벽의 곳곳에 외부로 연결되는

           문이 설치되어 있다.

 

           북한산성의 성문은 대남문, 대성문, 보국문, 대동문,

           용암문, 위문, 북문, 서암문, 수문, 대서문, 가사당암문,

           부왕동암문, 청수동암문, 중성문 등 14개소이며, 이중

           대서문, 대동문, 대성문, 대남문은 문루가 복원되어

           있다.

 

           동.식물이 서식하기에 좋은 환경으로 다양한 분포를

           이루며 동물로는 포유류  12종, 양서류 7여종, 파충류

           6종, 조류 87종, 곤충류 447여종이고, 식물류는 초본류

           에서 목본류로 692종의 다채로운 식물 들이 서식(산재)

 

* 설명(2) :

북한산의 일반 현황

높이는 836m이며 최고봉은 백운대(白雲臺)이다.

백운대와 그 동쪽의 인수봉(仁壽峰),남쪽의 만경대

(萬景臺:일명 국망봉)의 세 봉우리로 이루어져있어 삼각산(三角山)이라고도 하고, 화산(華山) 또는

부아악(負兒岳)이라고도 한다.


중생대 말기에 지층에 파고 든 화강암이 지반의

상승과 침식작용으로 표면에 드러났다가 다시 풍화작용을 받아 험준한 바위산이 되었다. 서울 근교의 산 가운데 가장 높고, 산세가 웅장하여 예로부터 서울의 진산(鎭山)으로 불렸다.


최고봉인 백운대에 오르면 서울 시내와 근교가 한눈에 들어오고, 도봉산·북악산·남산·관악산은 물론, 맑은 날에는 강화도·영종도 등 황해의 섬도 보인다. 인수봉은 암벽등반 코스로 암벽등반인들에게 인기가 높다.그 밖에 노적봉(716m)·영봉(604m)·비봉(碑峰:560m)·문수봉(716m)·보현봉(700m) 등 이름난 봉우리만도 40여 개나 된다.


등산 코스는 우이동·정릉·세검정·구파발을 기점으로 하는 코스가 대표적이다. 진관내동·세검정·성북동·정릉·우이동 등의 여러 계곡도 볼 만하다. 능선에는 북한산성이 8㎞에 걸쳐 펼쳐지는데, 평균높이는 7m이며, 14개 성문 가운데 대남문(大南門)·대서문(大西門)·대성문(大成門)·보국문(輔國門)·용암문(龍岩門) 등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또 비봉의 진흥왕 순수비 터를 비롯해 유명한 북한 이궁지(離宮址)와 진관사·문수암·태고사·원효암·상운사(祥雲寺)·도선사(道詵寺)·승가사·화계사 등 많은 사찰과 문화유적이 산재한다. 서울 외곽에 있어 연중 등산객과 일반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1983년 도봉산과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북한산 정상(백운대)

이 산은 경성(京城)의 진산으로 동명왕의 아들 온조가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서 살 만한 곳을 살폈다'는 기록이 있으며, '백운봉 (白雲峰, 지금의 백운대), 인수봉 (仁壽峰), 만경봉 (萬景峰,지금의 만경대)등 세 봉우리가 있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라고 유래를 기록하고 있다. 북한산성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북한산성은 백제 온조왕이 터를 잡았고 그후 개루왕 때 성터를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에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치른 뒤 숙종 37년(1711년)에 시작하여, 6개월 만인 그해 10월에 완공하였다 한다. 북한산성은 험한 산세를 이용하여 정상을 기점으로 서쪽 산자락부터 원효봉, 염초봉, 백운대, 만경대, 용암봉, 문수봉, 나한봉, 나월봉, 용출봉, 의상봉까지 연결하여 쌓은 산성으로 총 길이가 10km에 달한다. 당시 산성에는 14개의 성문을 냈는데, 산성의 정문 격인 대서문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수문, 서암문(시구문), 북문, 백운대를 지나 위문, 용암문, 대동문, 보국문, 대성문, 대남문, 청수동암문, 대서문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산성에는, 부황동암문, 가사동암문이 설치되었다.


북한산 북한산성

현재는 대부분 성문을 복원하였다. 북한산에 수많은 등산로가 거미줄 같이 얽혀 있어 산행시 주의를 요하는 곳이다. 북한산의 산행 들머리는 대표적으로 여섯 군데를 꼽고 있다. 우이동 기점, 4.19탑 기점, 정릉 기점, 세검정 기점, 불광동 기점, 구파발 북한산성 기점으로 구분할 수 있다.


북한산 일대는 동물들이 서식하기에 좋은 환경을 이루고 있어 양서류를 비롯하여 파충류, 조류, 포유류 등이 전지역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또한 온화한 기후 때문에 4계절에 걸쳐 다양한 식물 분포를 이루고 있어 참나무, 단풍나무, 진달래, 미선나무 군락 등 아름다운 꽃을 봄부터 가을까지 볼 수 있다.


일찍부터 명산으로 알려진 북한산 일대에는 신라때 창건된 유서깊은 고찰들을 포함하여 현재15개의 전통 사찰과 100여개의 크고 작은 사찰 및 암자가 있다. 대한 불교 조계종에 속한 도선사는 1,100여년 전 신라말엽의 도승이었던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는데, 불법과 천문지리의 심오한 이치를 통달한 도선국사가 명승 요지를 답사하다가 삼각산에 이르러 산세가 절묘하고 청수한 이곳에 사찰을 건립했다고 한다.

수유동쪽 삼각산 줄기에 자리잡고 있는 화계사(華溪寺)는 조선 중종 17년(1522년)에 신월선사가 창건하였으며 그 후 대원군의 시주로 중수되었다.

진관사(津寬寺)는 신라시대의 고찰이면서도 900여년 전인 고려 현종(1009-1031)때에 중창됐으나 그 뒤 난리속에 불타고 또 중수를 거듭해 지금은 대웅전과 불사(佛舍) 두서너채만 남아 있다.


북한산의 산봉우리

북한산은 그 줄기가 인수봉(仁壽峰)에서 남서쪽 백운봉(白雲峰:백운대)으로 이어지고, 백운봉에서 북한산성의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 오면서 만경봉(萬景峰:국망봉), 노적봉(露積峰), 용암봉(龍巖峰), 일출봉(日出峰), 월출봉(月出峰), 기룡봉(起龍峰), 반룡봉(盤龍峰), 시단봉(柴丹峰), 덕장봉(德藏峰), 복덕봉(福德峰), 석가봉(釋迦峰), 성덕봉(聖德峰), 화룡봉(化龍峰), 잠용봉(潛龍峰), 보현봉(普賢峰), 문수봉(文殊峰)이 연이어 솟아 있으며, 다시 문수봉에서 북서쪽으로 뻗어있는 나한봉(羅漢峰), 나월봉(蘿月峰), 증취봉(甑炊峰), 용혈봉(龍穴峰), 용출봉(龍出峰), 미륵봉(彌勒峰)의 줄기가 대서문(大西門)을 향하고 있다. 또한 보현봉에서 남동쪽으로 형제봉(兄弟峰)을 거쳐 북악산으로 내달은 주맥이 보이는데, 이 줄기는 예부터 도성과 연결된 용의 맥이라 하여 신성시하여 왔다.


대서문을 지나면 성내 계곡의 물을 흘려보내는 중흥수구(中興水口)에 닿는다. 이곳을 지나면 둥그렇게 능선이 휘어 원효봉(元曉峰), 영취봉(靈鷲峰), 시자봉(侍者峰)을 거쳐 다시 백운봉과 만나게 된다.


또한 능선안에는 기린봉(麒麟峰), 장군봉(將軍峰), 등안봉(登岸峰), 구암봉(龜巖峰), 상원봉(上元峰), 휴암봉( 巖峰) 등 높지않는 산들이 계곡 양쪽에 들어서 있다. 이 밖에 천룡강(天龍岡), 와룡강(臥龍岡), 주마강(走馬岡)이라고 부르던 높은 등성이가 있다.

인수봉은 고려시대에 일명 부아봉(負兒峰)으로도 불리었으며, 조선 숙종 때 북한산성을 쌓을 때 이를 지휘하고 『북한지』를 쓴 고승 성능(聖能)은 백제 건국 신화와 관련이 있는 산봉우리로 추정하였다.


백운봉은 백운대라고도 하며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봉우리이다.조선시대 여암 신경준(申景濬) 등은 백제의 건국과 관련이 깊은 산봉우리로 보았다.

만경봉은 그곳에 서면 눈 아래 산하(山河)가 만경(萬景)처럼 들어온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며 일명 국망봉이라고도 한다. 조선 건국 초에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한양을 조망하고 국도(國都)를 정했다는 유래에서 정해진 이름이나 국망봉이란 이름은 고려시대부터 있었으므로 믿을 바가 못된다.

 

위에 든 인수봉, 백운봉, 경봉을 합쳐서 삼각산이라고 불렀다.

보현봉은 조선 초기에 도성의 내맥(來脈)을 살펴 보기 위하여 오르내린 봉우리이다.조선 세종때 규표(圭表:태양관측기구)를 바로 잡기 위하여 수양대군 등이 출입한 일이 있고,영의정 황희 등이 세종15년(1433)에 이 곳에 올라 도성의 내맥(來脈)을 살핀 일이 있다. 단종때에는 수양대군이 강희맹,양성지 등 사계의 권위자들을 대동하고 보현봉에 올라 도성도(都城圖)를 최초로 제작하기도 하였다.

비봉(碑峰)은 그 정상에 신라시대의 진흥왕 순수비가 서 있어서 붙혀진 이름이다.


대(臺)의 명칭

대(臺)란 대체로 기암절벽으로 형성된 봉우리로 전망이 좋은 암봉(巖峰)을 말한다.위에 설명한 백운대ㆍ만경대가 대표적이며,미륵봉 아래 의상대(義相臺), 의상대 북쪽 수구 위에 원효대(元曉臺), 구암봉 아래에 태고대(太古臺), 동장대 옆에 소요대(逍遙臺), 보국사 남쪽에 법왕대(法王臺), 부왕사 앞에 유선대(遊仙臺), 보광상 왼쪽에 곡룡대(曲龍臺), 원효대 아래에 요초대(瑤草臺)가 있었다고 『북한지』에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에는 그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기가 쉽지않다.


동(洞)의 이름

여기에서 동(洞)이란 북한산의 백운동ㆍ금강산의 만폭동ㆍ설악산의 천불동 계곡 등과 같이 깊은 계곡을 형성하고 있는 아름다운 골짜기를 일컫는 말이다.

북한산에는 지금의 번지만큼 자세하게 골짜기마다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 사용해왔다. 장춘동(長春洞), 옥류동(玉流洞), 청계동(淸溪洞), 노적동(露積洞), 영천동(靈泉洞), 은선동(隱仙洞)ㆍ용계동(龍溪洞), 규룡동(叫龍洞), 잠용동(潛龍洞), 용유동(龍遊洞), 백운동(白雲洞), 자하동(紫霞洞), 중흥동(中興洞)이 그것이다. 자세한 위치는 성능이 쓴 『북한지』에 상세히 적혀 있다.


북한산의 사찰(寺刹)

북한산에는 많은 사찰이 있다. 이것은 북한산성을 수축하고 그 산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많은 절을 짓고 승려들로 하여금 북한산성 수비의 일을 담당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북한산성 안에 있는 사찰은 중흥사(中興寺), 태고사(太古寺), 용암사(龍巖寺), 보국사(輔國寺), 보광사(普光寺), 부왕사(扶旺寺), 원각사(元覺寺), 국녕사(國寧寺), 상운사(祥雲寺), 서암사(西巖寺), 진국사(鎭國寺), 봉성암(奉聖庵), 원효암(元曉庵) 등의 13개 절이 있다. 이 중에 중흥사는 고려시대 이래 있었던 절인데 황폐된 것을 고려 말기에 태고화상 보우(普愚)가 중창한 것이다.

북한산성을 수축할 때 본영으로 이용하였으며 당시 팔도 도총섭(都摠攝)이었던 성능이 대대적으로 중건하였다.

태고사도 고려 말기의 보우가 창건한 절이다. 그 외에 11개의 사찰은 북한산성 수비와 관리를 위하여 창건한 절인데 대부분 폐사되어 절터만 남아 있고, 태고사, 국녕사, 상운사, 진국사, 봉성암, 원효암 만이 다시 중건되었다.

북한산성 밖에 있는 사찰은 향림사(香林寺), 승가사(僧伽寺), 문수사(文殊寺), 진관사(津寬寺), 신혈사(神穴寺), 삼천사(三千寺), 청량사(淸凉寺), 적석사(積石寺), 도성암(道成庵), 장의사(藏義寺), 도선사(道詵寺), 화계사(華溪寺), 인수사(仁壽寺) 등이 있었는데 대부분 폐사되고 현재 승가사, 진관사, 삼천사, 도선사, 화계사 만이 현존한다.

북한산에는 북한산성을 수비 관리하기 위하여 많은 사찰을 건립하였지만 북한산이 도성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이곳을 찾는 불자들이 많아 산중 곳곳에 사찰과 암자가 많았었다.


삼각산 사당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는 전국의 명산·대천·성황·해도의 신(神)에게 봉작을 내리고 국가에 큰일이 있을 때에는 그곳에 가서 빌었다. 태조2년(1393)에는 송악의 성황(城隍)은 진국공(鎭國公)에 봉하고, 화령(和寧), 안변(安邊), 완산(完山)의 성황(城隍)은 계국백(啓國伯)에 봉하였으며, 지리산(智異山), 계룡산(鷄龍山), 삼각산(三角山)의 여러 산과 진주의 성황(城隍)은 호국백(護國伯)으로 봉작하였다.

태종 14년(1414)에는 삼각산의 신위를 백악산의 신위를 모신 사당에 옮겨 백악의 신과 짝 지웠는데, 삼각의 신은 남쪽으로 향하고 백악의 신은 서쪽으로 향하게 합사하였다.

태종 14년(1414) 8월에는 산천에 지내는 제사에 대한 규정을 확립하였다. 그 원칙은 『당례악지(唐禮樂志)』를 본떠 악(嶽)·진(鎭)·해(海)·독(瀆)은 중사(中祀)로 하고, 산(山)·임(林)·천(川)·택(澤)은 소사(小祀)로 하는 것이었다. 경성(京城) 삼각산(三角山)의 신(神)은 한강(漢江)의 신, 전라도의 지리산(智異山), 강원도의 동해(東海), 풍해도의 서해(西海) 신들과 함께 모두 중사처(中祀處)로 삼았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기우제, 기설제 등 국가의 중대사가 있을 때에는 제관(祭官)을 파견하여 제사하였다.


태종 16년(1416)에 삼각산에서 기우제를 드린 것을 비롯하여 정조 1년(1777)까지 수시로 기우제를 행하였다.

세종 7년(1425)에는 세종의 병환이 심하자 대신들이 종묘 사직과 삼각산에 가서 기도하였다. 세종 10년(1428)에는 서운관 책임자 박염에게 명하여 삼각산 꼭대기에 올라가 일식(日食)이 있을지 없을지를 관측하게 하였으며, 세종 22년(1440)에는 삼각산 정상에 가서 일식·월식을 측후(測候)하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삼각산은 조선시대에 기상관측소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한편 삼각산에 제관을 파견할 때에는 2품관인 고관이 헌관(獻官)을 맡고, 전사관(典祀官), 집례(執禮), 대축(大祝), 축사(祝史), 재랑(齋郞), 장생령(掌牲令), 알자(謁者), 찬자(贊者), 찬인(贊引), 감찰(監察) 등 10여명의 제관을 파견하여 제사를 드리도록 하였다.

출처 : jongno.seoul.go.kr(공원녹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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